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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영어를 함께

르세라핌 컴백 <ANTIFRAGILE> 타이틀+수록곡 리뷰, 가사 위주

by 영어마이닝 2022. 10. 20.

르세라핌이 2번째 미니앨범 <ANTIFRAGILE>로 컴백했습니다. 기대하고 기대했는데 타이틀곡은 물론 수록곡들까지 모두 섭렵할 생각에 너무 신납니다.

이번 앨범에는 데뷔 앨범과 똑같이 다섯 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다 듣고, 가사도 곱씹고 왔는데 확실히 곡들 간 메시지나 스토리가 연결이 잘 되어 있더라구요. 많은(?) 자본이 들어간 느낌이 마음에 듭니다. 그만큼 탄탄한 구성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노래를 들을 때 아무래도 가사에 집중하는데요. 글쓰기를 좋아하고, 또 언어, 어휘, 단어 선택, 이런 걸 눈 여겨 보는 쪽이라 가사 위주로 제가 느꼈던 개인적인 감상평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Track 01. The Hydra

 
The Hydra
아티스트
LE SSERAFIM (르세라핌)
앨범
ANTIFRAGILE
발매일
1970.01.01

데뷔 앨범의 "The world is my oyster."가 생각나는 트랙이었어요. 영어, 한국어, 일본어가 뒤섞여서 약간 런웨이 느낌, 혹은 명품 향수 광고 느낌?이 나는 트랙인 것 같아요.

제목을 왜 히드라(Hydra)라고 지었을까, 궁금했는데 가사를 들어 보니깐 대충 짐작이 가더라구요. 그,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괴수 히드라 있잖아요? 헤라클레스 12가지 시련 중 하나였나. 아무튼 대가리를 잘라도 잘라도 계속 재생되는 괴물... 신화 속에서 헤라클레스는 횃불로 히드라 대가리를 지져서 물리쳤던 것 같은데, 이번 르세라핌 앨범에서는 얄짤 없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나중에 타이틀곡에서 가솔린 부으라고 도발하거든요 ㄷㄷ.

첫 번째 트랙으로 Hydra를 제목으로 해서 그런진 모르지만, 이번 앨범이 신화 속 히드라를 모티프로 컨셉이 전체적으로 구성된 건 아닌지 지레짐작해봅니다. 가사 속에서도 자기의 머리를 자르라고, 자기를 부숴보라고, 추락시켜보라고 계속 도발하거든요.

"Antifragile"이란 단어는 Nassim Nicholas Taleb란 분의 저서 <Antifragile>에서 정립한 개념이라고 합니다. 위키에서 그대로 긁어와 볼게요.

Antifragility is a property of systems in which they increase in capability to thrive as a result of stressors, shocks, volatility, noise, mistakes, faults, attacks, or failures.

어떤 시련과 실패 이후에 더 단단해지는 특성을 "antifragility"라고 하나 봅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와 같은 속성이려나요.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널 죽이지 않는 건 널 강하게 만들 뿐.)과도 일맥상통하는 개념처럼 보입니다. 뭐, 르세라핌이라는 그룹에 사건이 좀 있긴 있었죠 ㅎㅎ..

The Hydra를 필두로 이 앨범은 참 도발적입니다. '날 더 시련에 빠뜨려봐. 날 더 고통스럽게 해봐. 난 더 강해질테니까.' 이런 느낌?

Track 02. Antifragile

 
ANTIFRAGILE
아티스트
LE SSERAFIM (르세라핌)
앨범
ANTIFRAGILE
발매일
1970.01.01

일단 첫 느낌은, 와 노래 신선하다, 이거 였습니다. 적당히 캐치하고 타이틀감으로 손색없다? 요정도의 느낌? 가사를 봤을 때는, 요새 '난 최고야, 난 두려울 게 없어.' 식의 노래가 워낙 많아서, 주제 면에서는 진부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래도 가장 특이한 부분은 아무래도 The Hydra 컨셉이겠죠.

더 부어 gasoline on fire
불길 속에 다시 날아 rising

불난 집에 부채집 하랍니다. "난 최고야. 네가 아무리 나에게 시련을 줘도 난 꿋꿋이 내 길을 가." 식의 주제는 특별할 게 없지만, "그래 불 붙여봐. 어디 한번 붙여 봐, 붙이라고, 아 붙여. 붙이라고." 라고 도발하는 모양새는 참 독특합니다. "불길 속에 다시 날아 rising"에서는 불사조 피닉스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잊지마 내가 두고 온 toe shoes
무슨 말이 더 필요해
잊지마 내가 걸어온 커리어

유튜브 쇼츠로도 떴던 걸 봤는데, 이 부분도 이 노래를 비슷한 부류의 노래들 중에서 눈에 띄게(stand out) 하는 대목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이 가사는 실제 본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집약하는 파트거든요. 발레를 했던 카즈하의 발레 슈즈(toe shoes). 그리고 한국 일본 오가며 그룹을 몇 번씩 바꿨던 사쿠라의 커리어. 본인의 실제 과거를 저렇게 풀어쓰니깐 공허한 말처럼 들리지 않고 진심으로 respect 하게 되는 파트였습니다. 마치 래퍼들이 자기 인생사를 가사에 직접적으로 녹이는 것처럼요.

아무튼 전 이 타이틀곡 호(好)입니다.

Track 03. Impurities

 
Impurities
아티스트
LE SSERAFIM (르세라핌)
앨범
ANTIFRAGILE
발매일
1970.01.01

타이틀곡에 비해 잔잔한 분위기의 수록곡이었습니다. 가사가 전해주는 이미지가 전 인상적이었습니다. Impurity. "In- + purity"의 구조로 돼있는 단어죠. 순수함(purity)의 반대, 불순함이라는 뜻의 단어였습니다.

근데 이 노래에서는 이 불순함이 "투명한" 나에 "떨어진 한 방울 drip"으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이 액체는 "검붉어지는 빛", "crimson"의 색깔과 연결됩니다. 마치 '인간은 원래 그런 거야. 원래 그렇게 "상처투성이" 인 거야. 그게 자연스러운 거야.'라고 말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전 가사의 메시지가 너무 좋았습니다. 인생이란 항로는 어차피 상처와 고난으로 가득한 길이라고, 그저 반짝이며 가면 된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우리 인간의 피가 붉은빛인 이유... 우리 인간은 태생적으로 impure한 존재이기 때문이려나요...? 그러면 천사의 피는 투명한가?

Track 04. No Celestial

 
No Celestial
아티스트
LE SSERAFIM (르세라핌)
앨범
ANTIFRAGILE
발매일
1970.01.01

제가 천사 이야기를 꺼낸 건 우연이 아니라는 거 아시죠ㅎㅎ? 뮤직비디오나 track sampler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천사 조각상이 계속 등장하죠. 깨졌다가 붙었다가. 아마도 이 수록곡에서 영감을 받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celestial"은 "하늘의, 천상의"라는 뜻입니다. "terrestrial"(지상의)라는 단어와 반댓말이죠. No celestial이랍니다. 천상을 거부한다? 바로 첫 가사에서 "천사 같은 완벽함은 bye"라고 말하네요.

노래 장르도 Pop Rock이라서 천상, 천사 뭐 이런 것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가사는 전반적으로 자기는 천사도 신도 아니다, 난 그냥 나대로 내 길을 가겠다, 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확실히 스토리나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긴 천국에서 내려온 천사가 아니라는 건, "impurities"를 품고 있는 인간이라는 뜻이니까요.

가사 중에 "down to earth"라는 부분도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down to earth"는 표면적인 의미만 직역하면 "지상에 내려온"이란 뜻입니다. No Celestial이라는 이 노래의 전반적인 이미지와 잘 맞죠. 그런데 "down to earth"는 "현실적인, 거짓 없는, 꾸밈 없는, 사람이 진실한"이라는 뜻도 품고 있습니다. 의미가 확장된 거죠.

어디 이상 속 완벽한 천사가 아니라, 불순하지만 가식 없는 인간이라는 메시지, 전 너무나 마음에 듭니다.

Track 05. Good Parts (when the quality is bad but I am)

 
Good Parts (when the quality is bad but I am)
아티스트
LE SSERAFIM (르세라핌)
앨범
ANTIFRAGILE
발매일
1970.01.01

역시나 주제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살짝 잔잔한데요. Track 2부터 Track 5까지 강잔강잔으로 구성했나 봅니다.

말그대로 나 자신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나 자신을 사랑하겠다는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나의 장단점을 모두 수용하겠다는 메시지죠.

이 노래 가사의 좋았던 점은 사진 화면을 모티프로 썼다는 점이었습니다. "pic of mine zoom in out pretend I'm fine", "polaroid", "4K cam", "reels"라는 가사에서 계속 그 점을 상기시키고 있죠.

최고 성능 고화질로 줌 땡겨서 보는 나 vs 폴라로이드 속 좀 흐릿하게 보이는 나, 뭐를 선호하시나요? 이 노래에서는 후자를 선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자는 아무래도 내 모든 민낯이 속속들이 다 드러나는 느낌이니까요 ㅎㅎ...? 그래서 빛도 바래고 볼품 없지만 "흐릿한"(blurry) 자신을 마주 볼 용기만 있다면 충분하다며 마음을 다독이고 있습니다. 인생을 사는 지혜라고 보면 될까요 ㅎㅎ... 앞선 The Hydra와 Antifragile에서는 상당히 단단해 보이고 굳세 보였는데, 마지막 수록곡에서는 사알짝 "vulnerable"한(?) 모습이 투영되고 있는듯해서 좋았습니다. 뉴진스의 "Hurt"가 떠오르기도 했구요.

이상으로 가사 위주로 르세라핌 컴백 2번째 미니앨범 <ANTIFRAGILE>에 대한 리뷰를 마쳤습니다~ 열스밍하세요~ 뮤비도 감상하시구요!!